<습작 - 서평>
『슬픈 나막신』
1. 지은이 : 권정생
2. 출판사 및 출판 연도 : 우리교육, 2002년 8월 10일 초판 인쇄
3. 등장인물 : 준이(중심 인물), 하나코, 에이코, 용이, 분이, 미쯔꼬, 히로시, 걸이 등
4. 시대적 배경 :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때부터 패전하기 전까지
(시기가 정확하게 언급되고 있지는 않으나 문맥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
5. 공간적 배경 : 이주해 있는 조선 동포들이 사는 일본의 어느 마을
6. 주요 사건
1) 하나코는 양아버지와 양어머니와 살고 있고 준이와 에이코와 모두 친구이다. 준이는 하나코에게 미래에 서로 결혼하자고 비밀 약속을 하는데 이를 분이가 알게 된다. 분이로 인해 에이코가 준이의 비밀 약속을 알게 되고 준이는 오히려 에이코와 친하게 지낸다. 이를 지켜본 하나코는 마음이 상하여 준이와 멀어진다.
2) 카즈오네 형 히로시가 준이네 작은형 걸이에게 조선 사람은 나쁘다고 말하여 싸움이 생기고 에이코, 하나코, 분이, 용이는 이 싸움을 보면서 조선 사람이 왜 나쁜 건지, 조선 사람은 왜 일본에 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3) 미쯔꼬가 용이, 준이, 카즈오, 하나꼬, 에이코를 데리고 신쥬꾸에 있는 백화점에 갔다가 길을 잃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4) 미쯔꼬의 개 매리가 개잡이에게 잡혔다가 겨우 풀려나자 미쯔꼬는 매리가 또다시 잡힐 까봐 전전긍긍하게 되고 매리를 업고 다니기까지 한다. 미쯔꼬에 시달린 매리는 결국 죽게 되고 미쯔꼬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잘살게 되면 훌륭한 개를 먹이자고 미쯔꼬를 달래지만 미쯔꼬는 크게 상심하며 괴로워한다.
5) 에이코, 하나코, 분이, 미쯔꼬가 술래잡기를 하다가 에이코가 쓰러진다. 에이코는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편찮으셨던 아버지를 돌보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냈던 터였다. 에이코는 결국 며칠 후 숨을 거두고 준이는 에이코를 그리워하다가 어머니 청송댁이 전쟁에서 일본이 지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을 보고 일본인이었던 에이코는 일본이 이기길 바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6) 전쟁이 점점 심해지자 집집마다 먹을 것이 더 부족해지고 공습을 대비한 대피 연습도 실시된다. 특히 형편이 어려운 분이를 따라 용이와 준이는 고철을 주워 모으고 이를 팔아 돈을 번다.
7) 준이네 작은형 걸이, 히로시가 징병 되어 어디론가 떠나가고 준이는 작은형이 무사하길 바라며 일본이 꼭 이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8) 수시로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아이들은 몹시 불안해한다. 그러던 중 하나코의 집안에 감춰둔 묵직한 상자(아편)가 발견되면서 하나코의 아버지가 일본 형사들에게 붙잡혀 가버리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버리자 하나코는 혼자가 되어 버린다.
9) 공습과 폭격으로 마을은 엉망이 되고 사람들은 방공호에서 밤을 보내며 가족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눈다.
10) 하나코, 용이, 준이, 미쯔코는 잿더미가 된 공터에 모여 연극놀이를 하며 놀고 저녁이 되면 살아남은 가족이 있는 친구네에서 밤을 보낸다. 그러다가 준이는 조선이 나쁜 이리 배 속에 들어 있는 아기 양 같다는 생각을 하고 미국도 일본도 모두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이리 같다는 생각을 한다.
11) 비가 내리는 날 하나코는 준이에게 고아원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하고 준이는 하나코와 노래를 부르며 엄마 양이 어서 와서 새끼 양들을 구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7. 역사동화로서의 가치
1) 아이들의 삶에 뚜렷이 담긴 암울한 시대적 상황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에 살던 조선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다른 역사동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그러나 이주한 조선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동화는 그리 흔치 않다. 자의든 타의든 일본으로 이주하여 온갖 천대를 받으며 가난한 삶을 이어가야 했던 이주 조선인들은 직접 독립운동을 하거나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삶을 살지는 않지만, 그들이 한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생각은 조선에서 살던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준이는 몰랐지만, 아저씨들은 조선의 해방을 위해 남몰래 모여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잇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 순경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며 무슨 일을 하는지 일절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눈치만 보고 남모르게 그들을 돕고 있었다.(154-155쪽)
“마구 때렸어. 그러고는 조선놈이라 욕했어, 흑흑…….”
“뭐라고?”
상주댁은 그제야 얼굴빛이 달라졌다.
“카즈오네 형이 나한테 조선놈의 자식이래……. 흑흑…….”
상주댁은 용이의 얼룩진 얼굴을 행주치마로 닦아 주고 나서, 잠시 동안 품에다 꼭 안았다. 먼 곳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39~40쪽)
자식이 조선인이라며 무시를 당해도, 조선이 아닌 일본을 위해 싸우는 군인으로 징집되어 가도, 폭격으로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어도 어디 내놓고 하소연할 때도 없는 이주 조선인들의 삶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걸이는 아침 해가 환히 드는 조선 나라를 빼앗긴 것만도 억울하고 원통하다 했는데, 카즈오네 어머니 말대로 일본을 위해 용감히 싸울 수 있을는지?
‘아니야, 작은언니는 분명히 자신을 위해 싸우겠다고 했어. 그런데 그 말은 무슨 뜻일까?’
준이는 되풀이 되풀이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 어머니의 한숨 소리도 전보다 갑절이나 늘어났다.(193-194쪽)
2)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작가의 역사의식
일본이 일으킨 전쟁, 조선 침략 행위는 제국주의 의식에 사로잡힌 일본 지도 계층이 중심이 되어 벌인 일이다. 이는 일본인 모두가 세계 전쟁이나 조선 침략 행위에 대해 찬성하였던 것이 아니며 일본의 참패로 인해 희생된 무고한 일본인들에게까지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 속에 보면 조선인에 대해 우호적인 일본인도 있으며 오히려 조선을 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나라라고 인식한 일본인들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반도로 넘어와 살던 일본인 대부분은 조선 땅에서 풍족하게 살겠다는 제국주의적 의식을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한반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일본에 남아있던 일본인 중에는 올곧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나까무라 씨는 안심을 했다. 그러고는 둘러선 사람들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히로시군, 우리들은 사소한 일을 가지고 이렇게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조선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는 큰 일입니다. 우리는 조선 사람과 원수가 아닙니다. 조선 사람은 우리의 동지입니다. 그들은 일본을 위해 전쟁터에서 미국과 싸우고 있습니다.”(87-88쪽)
대부분의 이주 조선인의 삶은 가난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간에도 빈부의 격차는 엄연히 존재하였고 조선인보다 가난한 일본인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에이꼬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방 안은 가난으로 가득 차 있다. 낡은 장롱은 군데군데 금이 가고 빛이 바래어져 있다. 판자 쪽 천장은 나가야의 여느 집과 똑같이 새까맣게 파리똥으로 더럽혀져 있다. ………
“에이꼬야, 오늘 점심 못 먹었지?”
청송댁이 말을 바꾸어 이렇게 물었다. 에이꼬는 고개를 끄덕였다.(128쪽)
3) 뛰어난 문학적 상징성과 간결한 문체
작가는 글 속에 우리의 역사를 그대로 녹여내어 보여주고 있지만 작품이 현실성에만 뿌리를 둔 기록물과 같은 인상은 전혀 풍기지 않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작품 곳곳에 심어 놓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들 때문이고 훌륭하게 형상화된 문학적 표현들 때문이다.
‘슬픈 나막신’이라는 제목을 보자. 나막신은 비가 와서 땅이 질어질 때 신는 나무로 만든 신인데 글 속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 보통의 날에도 조선 이주민 아이들은 나막신을 신고 있다. 일본의 게다와 유사한 신발이지만 결코 일본의 게다는 될 수 없는 조선의 나막신을 신고 험한 삶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록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떠나온 조국을 결코 잊지 못하며 멸시와 가난 속에 힘든 삶을 사는 우리나라 백성들의 슬픔을 나막신으로 표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전체로 볼 때 각각의 문장과 문단의 길이가 간결하다. 글의 호흡이 간결하니 읽기도 쉽고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이해하기에 전혀 어렵지가 않다.
에이꼬는 자꾸 피를 토했다. 기침을 힘들여 하기도 했다. 모가지는 더 상큼하게 길어지고, 낮에 하얗던 얼굴이 저녁녘에는 봉숭아 빛깔로 물들었다.
마늘을 구워 먹기도 하고, 명주 수건에 싸서 목에 두르기도 했다. 초겨울까지는 그런대로 학교에 다녔다. 이상하게도 전에 없이 자꾸만 배가 고팠다. 그러나 마음껏 먹을 것이 없었다.(129쪽)
4) 주요 인물과 사건의 중심이 모두 어린아이들
준이를 비롯한 하나코, 에이코, 용이, 분이, 미쯔꼬 등의 등장인물은 모두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다. 그중 절반은 조선 이주민 아이이고 절반은 일본인 아이이다. 일본인 아이들 중에는 가끔 조선인이라고 놀리는 아이도 있지만 대개는 서로 구분 없이 잘 어울린다. 겁 없이 백화점에 같이 갔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술래잡기 놀이도 같이 하고, 기르던 개가 죽거나 친구, 가족이 죽음을 맞게 되어 상심하는 일이 있을 때는 서로를 의지하기도 한다. 결국 조선 아이든 일본 아이든 역시 아이는 아이인 것이다. 이 아이들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과 전쟁의 비참함은 어느 나라가 이기길 소망해야 하는지를 몰라 고민하게 만들고, 폭격으로 없어져 버린 집들을 보면서 무엇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잡혀간 아버지와 징집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지내는 것이다.
조선에 살면 조선 사람이고, 일본에 살면 일본 사람이 아니라 조선 사람은 어디에서 살든 조선 사람이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무고한 일본 사람도 역시 일본 사람인 것이다.
하나코는 정성껏 비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비가 그치고, 그리고 지루하고 고달픈 전쟁도 끝나야 한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가 돌아오고 어머니가 오셔야 한다. 불탄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살고 싶다. 동생 스즈꼬도 찾아야 한다.(243쪽)
폭격으로 부서진 나가야의 빈터에 구슬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전쟁으로 피곤해진 아이들의 모습처럼, 주저앉은 판자 쪽 움집을 빗방울이 때리며 나지막한 추녀 끝으로 흘러내린다.
어른들은 모두 일터로 나가고 조그만 거적을 깔아 놓은 움집 속에 준이와 함께 하나꼬는 오두마니 앉아 있었다. 둘은 말없이 판자 틈 사이로 내다보이는 바깥을 멍청히 보고만 있었다.(236쪽)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고 10살 되던 해인 1946년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자기가 직접 보고 겪었던 일본에서의 삶과 전쟁의 아픔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대로 글 속에 옮겨 담은 것이 바로 『슬픈 나막신』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역사의식, 그 시대를 살았던 삶의 생생한 반영, 뛰어난 문학성과 간결한 문체, 거기다 아이의 눈높이에서의 이야기 전개 등의 요소들은 역사동화의 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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